▲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는 21세기 한국축구의 빛나는 성취다.
▲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는 21세기 한국축구의 빛나는 성취다.

[스포티비뉴스=상암동, 박대현 배정호 정형근 기자]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은 21세기 한국축구의 빛나는 성취다. 

레이먼드 베르하이옌(50)은 이 눈부신 발자취의 숨은 주연이었다. 2002년 거스 히딩크 사단으로 처음 한국과 연을 맺은 그는 셔틀런을 도입한 혹독한 체력훈련으로 '공포의 삑삑이'란 별명을 얻었다. 한국축구는 베르하이옌이 구성한 프로그램을 계기로 피지컬 코치 중요성에 눈을 떴다. 히딩크 감독이 지적한 "한국은 기술이 아닌 체력에 문제가 있다"는 선언이 오랜 편견을 깨부순 변혁 기치였다면 베르하이옌은 실제 문제를 보완하게 해준 지근거리 스승이었다.

베르하이옌은 최근 '풋볼 코치 에볼루션(FCE)'이라는 코치 교육 단체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 네덜란드, 웨일스 등 각국 대표팀은 물론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시티, 첼시 등 유수 클럽에서 코치직을 수행하며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다음 세대 코치들에게 전수해주고자 창설했다. 

지난달 28일에는 한국을 찾아 피치가 아닌 연단 위에 섰다.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K리그 유소년 지도자 피지컬 교육'에 강연자로 나서 눈길을 모았다. K리그 구단 산하 유소년 피지컬 코치를 포함한 지도자 40여 명에게 '전술 원리의 주기화'에 대해 설명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베르하이옌은 세계 축구 트렌드로 부상한 '축구과학'에 대한 소견과 최신 코칭 기술·지도자 육성에 관해 목소리를 높였다.

▲ 거스 히딩크 사단으로 한국축구와 연을 맺은 레이먼드 베르하이옌(사진)은 현재 '풋볼 코치 에볼루션(FCE)'을 설립해 후배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 상암동, 배정호 기자
▲ 거스 히딩크 사단으로 한국축구와 연을 맺은 레이먼드 베르하이옌(사진)은 현재 '풋볼 코치 에볼루션(FCE)'을 설립해 후배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 상암동, 배정호 기자

다음은 레이먼드 베르하이옌과 일문일답.

-현재 '풋볼 코치 에볼루션(FCE)'를 설립해 활동 중이다. 설립 계기가 궁금한데.

FCE를 설립한 이유는 간단하다. 난 전 세계에서 코치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코치 교육은) 굉장히 주관적으로 이뤄진다.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 의견이나 과거에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한 교육이다. 사람이 아프면 의사에게 간다. 의사에게 기대하는 건 객관적 지식이다. (환자는) 내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질병 또는 의약에 관한 지식을 의사가 갖고 있을 거란 기대를 한다. 하지만 어째선지 축구에선 경험이 지식보다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국가 대표 소속으로 100경기를 뛴 선수가 많은 지식을 지닌 선수보다 더 낫다고 받아들여지는 거다. 

그럼 그 경험이란 것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어느 코치가 한 팀에 A전술을 적용했다 치자. 이를 통해 리그에서 우승을 거뒀다. 그러면 선수들은 A전술이 정말 좋은 방법이라 받아들일 게다. 반면 어느 팀은 A전술을 적용했는데 해당 시즌에 강등을 당했다면 선수들은 A전술이 지닌 방향이 잘못됐다고 느낄 것이다. 강등을 당했으니까.

두 팀에서 뛰는 선수들은 각자 경험에 의해 A전술의 가치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 같은 개념인데도 말이다. 경험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이유다. 굉장히 주관적일 뿐더러 이런 의견은 승리나 패배에 큰 영향을 받는다. 

(우승팀) 선수가 나중에 코치가 되면 A전술을 적용하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강등팀 선수는 반대로 여길 것이고. 이렇듯 경험은 (크게) 신뢰할 수 없는 정보다. 

반면 지식은 객관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다. 선수를 환자라고 하면 (환자가) 의사에게 바라는 건 객관적인 지식이나 믿을 수 있는 정보다. 하지만 코치가 되면 믿을 수 없는 주관적인 경험을 지식보다 더 중요히 여긴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것이 내가 FCE를 설립한 이유다. 입맛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에 객관적인 지식에 기반을 두고 코치를 교육하는 게 목적이다.

-FCE의 교육 콘텐츠에 대해 설명해달라. 

(단체명인) 축구 코치 진화라는 측면에 부합한다면 우리는 그에 해당하는 모든 방면의 교육을 진행한다. 선수와 의사소통을 더 원활히 하기 위한 전술 교육, 선수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기 위한 (경기를 접근하는) 인사이트 교육을 진행한다. 

축구 테크닉과 피트니스는 물론이고 선수가 정신적으로도 강인해질 수 있도록 심리학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심리적인 개념을 설명할 때 전후사정을 고려치 않고 얘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강인한 멘탈'이 대표적이다. 사실 이게 대체 뭔 뜻인가. ‘강철 멘탈'은 어디 가서 사거나 빌릴 수 있는 것인가(웃음). 참 모호한 표현이다.

사실 축구에서 심리는 선수가 특정 액션을 취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 선수가 바로 다음 액션을 생각하는지 혹은 이미 지난 액션에 관해 생각하는지가 요지다. 

‘아까 그 기회를 왜 못 살렸지?’ 라든가 ‘아 우리가 0-2로 지고 있구나' ‘피곤하다' ‘방금 심판 판정이 틀렸네' 같은 액션을 취할 때 생각에 관한 얘기다. (요지는) 정신적인 강인함을 주문하기보다 주변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언제나 '다음 액션'만을 생각하라고 독려해야 한다. (선수가) 이미 일어난 일은 잊고 다음 액션, 그리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액션에 대해서만 고민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건 멘탈적인 강인함과 상관이 적다. 경기장에서 뭔 일이 일어나도 경기를 뛰는 11명의 선수는 언제나 다음 액션만을 생각할 수 있도록 코치해야 한다. (다음 액션이) 압박이 됐든 전환이 됐든 혹은 드리블, 슈팅, 패스 그 무엇이 됐건 말이다. 

아울러 피로감을 느끼건, 0-2로 지고 있는 상황이건, 동료가 퇴장을 당해 10명이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직 다음 액션이다. 날씨가 더울 수도 있고 비가 올 수도 있으며 상대 팀 수비수가 뭐라 소리치고 있는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전부 무시하고 다음 액션에 관한 생각만 하라는 거다.
 
이것이 우리가 (어린) 코치들에게 가르치는 것 중 하나다. 요약하자면 피트니스 개념에 관한 교육만이 아닌 축구를 이루는 모든 구성 요소를 다루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FCE를 설립할 때 '작은 오해'를 받았다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FCE를 막 시작했을 때 각국 축구협회가 이를 하나의 위협으로 봤다. 우리가 그들이 하는 일을 빼앗고 있다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 목적은 축구협회 역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으로 기여하는 데 있다. 예컨대 협회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넓은 범위의) 교육을 한다. 일부분이라도 모든 주제를 다루고 교육하는 것이다. 

FCE가 지향하는 건 하나의 주제를 좀 더 자세히 파고들어 (다음 세대 코치들이) 공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특정한 하나의 주제를 깊게 다루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FCE 교육은) 협회 차원의 교육에 '추가로' 내용을 더하는 구조인 셈이다. FCE는 서로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마치 1+1이 3이 되는 것처럼. 

-FCE만의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축구인과 교류를 한다 들었다. 루이 판할 전 네덜란드 대표 팀 감독과 그레이엄 포터 첼시 감독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과 어떻게 논의하고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축구와 관련해 하나의 모형 이론이 있다 치자. 이 이론은 기초가 된다. 그리고 점차 (해당 이론은) 전술적인 측면 등으로 세분화된다. 나는 이 모형 이론을 시작점으로 잡고 이를 특정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나 내가 상정한 모형은 가설이다. 그래서 특정 분야 전문가와 대화를 나눈다. 내가 먼저 전문가에게 상정한 가설을 제시하고 전문가는 피드백을 한다. 가설을 부정해달라 요청하는 셈이다. 내 생각에 틀린 점이 있는지 찾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 전문가의 반박일지라도 그 반박이 '의견'이어서는 안된다. 객관적인 반박이어야 한다. 왜 틀렸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피드백을 받으면 난 이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전보다 나아진 또 하나의 가설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물론 전문가 역시 반박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해당 이론을 교육 과정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전 세계를 돌며 코치 교육을 할 때도 이뤄진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건 최소 (교육장에) 1명은 똑똑한 어린 코치가 있기 마련이다. 이론을 강의하고 있는데 그 코치가 번쩍 손들어 '방금 그거 맞는 얘긴가요?'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문가가 아닌 어린 코치가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강사와 교육생 역시) 피드백을 교환하며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FCE 이론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정말 다양한 배경의 많은 이들에게 검증을 받다 보니 조금은 안정적인 상태에 진입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축구과학'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어떻게 보는지.

'스포츠 사이언스' 발전은 상당히 큰 문제라 본다. 스포츠 사이언스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문제다. 왜 이 개념이 ‘풋볼 사이언스'가 아닌 스포츠 사이언스로 불리는 건지 의문이다.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라면 스포츠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이언티스트라는 의미일 게다. 그러나 축구 팀에서 사람을 뽑을 때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뽑고 싶을까 아니면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을 뽑으려 할까. 스포츠 사이언티스트가 필요한 건지 풋볼 사이언티스트가 필요한 건지 모두가 스스로에게 자문해봐야 한다.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이는 전날에는 조정협회나 핸드볼협회 관련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오늘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조정과 핸드볼, 축구는 완전히 다른 스포츠인데도 말이다. 

이는 곧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는 (특정) 종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도 통용될 수 있다. 이들은 ‘결국 이것도 (넓게 보면) 과학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틀린 말이다. 일단 스포츠 자체에서 시작하되 (특정) 스포츠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접근을 택해야 한다.

바라건대 축구계의 의사결정권자인 구단 단장이나 감독들이 팀에 스포츠 사이언티스트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충분히 이해했으면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은 풋볼 사이언티스트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는데 ‘퍼포먼스 코치'란 개념이다. 모든 클럽에 퍼포먼스 코치(Head of Performance) 직위를 가진 사람이 있다. 스포츠 사이언티스트의 상사라고나 할까. 

축구에 있어 퍼포먼스는 곧 승리를 뜻한다. 동시에 공격과 수비를 아우르는 의미이기도 하다. 패스, 드리블, 슈팅 모두가 축구에서는 퍼포먼스다. 그렇다면 누가 그 퍼포먼스의 수장(head)인가. 바로 감독이다. 팀과 선수 퍼포먼스를 책임지는 건 바로 그 팀의 감독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퍼포먼스 코치는 곧 감독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스포츠 사이언티스트가 담당하는 일은 (선수의) 회복과 모니터링, 재활, 영양 등이다. 이건 퍼포먼스가 아니라 ‘프리 컨디셔닝(Pre-Conditioning)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프리 컨디션 코치'나 ‘프리 컨디션 헤드(Head of Pre-Condition)'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보면 지식이 부족한 탓이다. 요약하자면 스포츠 사이언스는 ‘풋볼 사이언스'로, 퍼포먼스 코치는 ‘프리 컨디션 코치'로 바꿔 부르는 게 타당하다. 

물론 과학 지식은 축구에도 유용하다. 그러나 축구서부터 시작해 축구를 이해하고 축구에서 일어나는 아주 특수한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 과학적인 지식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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