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호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 ⓒ SPOTV NEWS 한희재 기자
[SPOTV NEWS=박현철 기자] 3년 전 그는 데뷔 팀 경쟁에서 밀려 트레이드로 새 기회를 찾게 된 만년 유망주였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해외 복귀 선수, 프리에이전트(FA) 선수를 제외한 프로야구 역대 최고 연봉 타이 기록을 세운 국내 최고의 거포로 자리매김했다. 폭풍 성장한 박병호(28, 넥센 히어로즈)는 그 3년 간 굉장한 반전 드라마를 썼다.

넥센은 25일 52홈런으로 찬란하게 빛난 4번 타자 박병호와 2014년 연봉 5억원에서 2억원(40%) 인상된 7억원에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연봉 7억원은 비FA 선수들 중 SK 최정(2014년 연봉 7억원)과 함께 역대 최고 타이 기록이다.

성남고 시절 4연타석 홈런으로 각광받으며 2005년 LG 1차 지명 입단했던 박병호는 LG 시절 유망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탁월한 배팅 파워는 일찍부터 인정받았으나 1군에서의 실적이 나오지 않자 박병호 앞의 출장 기회는 그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당시 LG는 연이은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인해 유망주에게 오랜 시간을 투자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그의 착한 성품도 발목을 잡았다. A라는 지도자가 ‘넌 이렇게 쳐야 해’라고 지시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관계자가 ‘넌 그렇게 치면 안 되고 저렇게 쳐야지’라며 이야기했다. 모질지 못했던 박병호는 여러 조언을 모두 시험하다 결국 제 타격을 찾지 못하고 유망주의 틀 속에서 LG 시절을 보내야 했다. 팬들의 극심한 비난도 박병호에게 말 못할 마음 고생을 안겼다.

그럼에도 박병호는 LG를 떠나며 “제가 못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지요. 배려해주신 선후배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분들. 그리고 제게 많은 기대를 하셨던 LG 팬 여러분께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송신영+김성현 트레이드로 우완 심수창(롯데)과 함께 넥센 유니폼을 입은 뒤 박병호는 달라졌다.

당시 김시진 넥센 감독은 “병호에게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겠다. 적어도 2011시즌 후반기 만은 병호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놀 마당을 주겠다”라며 무한 신뢰를 비췄다. 2011시즌 13홈런으로 자신을 감싸던 알을 깨기 시작한 박병호는 2012시즌 31홈런, 2013시즌 37홈런으로 국내 최고 거포 반열에 오른 뒤 올 시즌 이승엽(삼성, 2003년 56홈런), 심정수(은퇴, 2003년 53홈런) 이후 전인미답이던 50홈런 고지를 밟았다. 시즌 최종 기록은 52홈런이다.

누군가는 홈구장 목동의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으나 박병호는 다른 구장에서도 위력이 뛰어났고 비거리도 120m를 훨씬 상회했다. 쭉쭉 뻗는 박병호의 타구만큼 그의 연봉도 6200만원에서 2억2000만원, 5억원. 그리고 7억원까지 쭉쭉 뻗어나갔다. 연봉 계약 후 박병호는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도와주신 구단과 감독님, 코칭스태프, 선수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모든 분들의 배려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그리고 연봉계약 역시 감사드린다. 팀의 중심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반영 되었다고 생각하며, 더 많이 노력 하겠다”라고 밝혔다.

최고 거포로 자리를 굳혔음에도 겸손을 잃지 않은 박병호는 “현재 개인훈련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팀이 나에게 원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지난 시즌의 아쉬움은 잊고 내년 시즌 더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서겠다”라며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아픔을 다음 시즌 우승과 스스로의 맹타로 모두 씻겠다는 각오를 이야기했다.

2008년 말 갓 상무에서 제대한 박병호를 경남 진주 LG 마무리 훈련에서 본 적이 있었다. 큰 체구에 당당한 호남형 외모에도 그는 공손한 태도와 성실한 훈련자세로 당시 진주를 찾았던 취재진의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모두 “저 친구 잘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바랐으나 아쉽게도 LG에서 꽃 피우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넥센에서 새로운 타자로 점차 진화하며 국내 최고 거포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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